대공황 이란? 대공황의 원인, 영향, 대처까지 전부 살펴보기

대공황 원인 영향 대처 미국주식

 

대공황. 들어보셨나요? 미국주식에 투자하고 있다면 익숙하게 들어보셨을 말입니다. 대공황은 전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날린 사건이었습니다. 1929년부터 1939년까지 10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완전히 대공황 이전 고점을 탈환한 것은 1954년으로 무려 25년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대공황 의 원인과 영향, 대처까지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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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원인 영향 대처 미국주식

대공황이란?

오늘의 글
대공황의 원인과 영향, 대처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대공황 원인 – 경제가 주는 경고

 

대공황의 원인은 딱 이렇다 하는 한가지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는 사건이며, 경제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주장들이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몇가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엄청난 수준의 투기

: 1920년대의 미국주식 시장은 과도한 수준의 투기판이었습니다. 끝 없이 버블이 쌓이고 있었고, 연준으로부터 경계 하라는 경고까지 나왔습니다. 그렇게 기반 없이 마구 오르던 시장에 1929년도 충격이 가해져, 그 결과 패닉과 엄청난 매도 물량이 쏟아져 나와 주식 시장은 일순간에 붕괴했습니다.

2. 경제적 불균형

: 1920년대는 엄청난 속도의 기술 발전과 새로운 제품들이 공장에서 찍어나오듯 나오던 시기입니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부자들을 탄생시켰으나, 그것은 극소수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출의 의존도가 컸고,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소비력 감소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인 JP모건이나 헨리 포드 등도 이 시대의 인물입니다.

3. 산업 전환, 과잉생산

: 산업이 전환되는 시기로 미국은 모든 것을 엄청난 속도로 찍어냈습니다. 거기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산업군 중 하나로 농업이 있으며, 과잉 생산을 했으나 그만큼의 소비력이 충족되지 못했고 소득 감소, 빚을 갚지 못함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 되었습니다.

4. 금본위제와 높은 관세

: 여기서 금본위제를 자세히 알 필요까진 없습니다. 간단하게 금본위제란 화폐 발행량과 금의 보유량을 일치시켜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는 제도입니다. 금본위제와 높은 관세로 인해 국가간의 무역이 줄어들고, 전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을 둔화 시키게 되었습니다.

5. 은행 시스템

: 은행 업계가 안일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인데 대출에 대한 심사가 상당히 쉬웠고, 능력이 없어도 대출을 내어주는 위험한 시스템이었습니다. 경제 위기가 겹치기 시작하면서 은행이 무너지고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의 뱅크런이 시작되면서 무너지는 속도는 더 빨라졌습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정도는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가장 치명적으로 경제를 망친 건지는 모릅니다. 다만 모두가 문제였다는 사실입니다.

 

월스트리트 폭락이 당긴 방아쇠 – 그 후의 여파

 

다른 나라의 크고 작은 문제들, 연준의 경고.

그 와중에 검은 목요일, 검은 화요일로 불리기도 하는 월스트리트 폭락이 터지고 극도의 불안의 시달리던 투자자들과 시민들은 엄청난 매도 물량과 뱅크런을 시작합니다.

월스트리트 폭락을 직접적인 대공황의 원인은 아니어도 방아쇠 정도는 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 1929년 9월 3일에 찍은 다우존스 최고점 381
  • 1932년 다우존스 최저점 41

 

다시 최고점을 돌파한건 1954년 11월로 최고점이 깨진 후부터 하락으로 본다면 25년이나 이어진 장기 하락이고 이미 미국주식 역사상 가장 긴 하락 입니다.

개별 주식보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평가 받기에 많이 권하는게 지수추종 투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장이 통째로 최고점에서 90퍼센트에 육박하는 대공황의 폭락이 얼마나 심각 했는지 이해되실 거라 생각됩니다.

대공황이 세상에 남긴 흔적은 증시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대공황, 미국에 미친 영향력 – 치솟는 실업률과 빈곤함

 

대공황은 미국 사회 전역에 걸려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업률은 미친듯이 치솟아서 1933년에는 거의 25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추정치지만 약 15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헤매게 됐습니다.

그나마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도 임금 삭감과 지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황금기 내내 꾸준히 늘어온 개인의 빚과 물가는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빈곤한 생활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존 은행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저축 해오던 개인들의 돈은 묶이거나, 잃게 되었고, 재정적인 문제가 악화 되었습니다.

 

대공황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도 큰 변화와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이 당시를 공부해보면 정치권을 향한 분노도 알 수 있습니다.

1929년 3월 4일부터 1933년 3월 4일까지 재임했던 미국의 31대 대통령 허버트 클라크 후버가 대공황의 주범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간 쌓여온 증시의 버블이 그의 재임 기간에 터졌고, 시간이 수습 해줄 것이라는 안일한 포지션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수습에 실패했습니다.

 

압류로, 재정 악화로 집을 잃고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이 판자촌을 형성 했는데 그 판자촌을 후버 빌이라고 부릅니다.

판자촌 말고도 가난에 관한 몇몇 단어에서 후버 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후버 대통령을 가난의 원인으로 생각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다음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는 전혀 다른 노선을 타게 됩니다.

 

 

뉴딜 정책 – 정부의 대응

 

허버트 클라크 후버는 경제 살리기에 실패했습니다. 빠르게 행동 해야했던 대공황 초기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제자리로 돌아가길 바라며 기다리는, 기우제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고, 뒤 늦게 잘못됨을 감지하고 은행 및 기관 등에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구제 조치를 시행하는 식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이라는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뉴딜은 중심이 되는 부분만 본다면 구호, 복구, 개혁을 목표로 두고 무너진 사회 전방위를 개선했습니다.

첫 100일 이라고 불리는 루스벨트의 임기 시작부터 100일이라는 기간동안 의회의 적극 협조에 힘입어 첫번째로 통과 시킨 것이 은행 정상화를 위한 긴급은행법 입니다. 앞서 후버가 진행했던 은행 및 기관 등에 금융 지원을 해주는 법안을 계승한 것인데 연방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훨씬 더 규모 있는 회생 계획입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 몇가지만 알아보겠습니다.

 

1. CCC 도입

: 요점만 말한다면 민간으로 국토 개발 사업을 진행하여 일자리를 제공한 것 입니다. 약 3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어, 엄청난 수의 나무를 심고, 전국에 트레일과 쉘터, 다리를 건설하고, 산불 피해 지역을 복구하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2. 사회보장법

: 그 이전엔 사회보장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정부 주도하에 제대로 구성된 것은 처음이였고, 현재의 미국 사회보장법의 뿌리입니다.

3. WPA

: 공공사업진흥청 입니다. 대공황이 터진 후로 넘쳐나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방편 중 하나인데, 도서관, 도로, 정부 건물의 벽화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예술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그 이야기는 짧게 설명하기엔 아쉬우니 추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4. SEC 설립

: 증권거래위원회 입니다. 미국주식 기사를 보다보면 가끔씩 주가조작 혐의나 공시 등에 증권거래위원회의 입장 등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 증권거래위원회가 이때 생겼습니다.

 

뉴딜은 위에 설명한 것 외에도 미국사회의 많은 부분을 뒤바꾼 대규모 프로젝트 입니다.

뉴딜이 대공황을 끝냈다고 말하기엔 어렵지만, 대공황의 피해를 완화하고 추후의 미국 경제 회복의 발판을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대공황 이후를 이야기하면 뉴딜 정책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완벽한 정책은 아니었지만 뉴딜 정책이 바꾼 것들이 지금도 상당 부분 남아서 미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공황이 준 충격으로 인해, 회복하기 위해 했던 뉴딜 정책 등의 노력으로 인해,

대공황은 미국의 전환기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 위기에 있어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기존의 경제학을 뒤바꾼 질문을 던진 사례로, 이 무렵이 거시경제학의 뿌리가 되는 케인스 경제학이 주목을 받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지인들이 과거의 사건을 공부하려고 하면 대공황부터 공부해보라고 권하곤 합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 현대 사회의 근간이 이때 마련된 것이 많아서 이해하기도 쉽고

현재의 경제 시스템의 기반, 경제와 정부의 역할을 배우기에 매력적인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움되는 시간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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